김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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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사회 위의 껍데기 국가 | 한겨레카럼 2015년 12월 22일

“죽는다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합리적인 일은 아닙니다.” 하루에 38명이 자살하는 세계 최대의 자살 공화국 한국에서 서울대생이 자살했다고 특별히 주목할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유서에 남긴 이 한마디를 며칠째 자꾸 되씹는다. 개인적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이론을 지지하는 나는 다른 청년들에 비해서는 장래가 덜 비관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의 자살 사건과 며칠 전 고시원에서 외로움 속에 죽음을 맞았을 한 청년의 사망 사건을 참으로 무겁게 받아들인다. 며칠 전 2학기 마지막 강의 시간에 나는 오늘의 청년 문제에 대해 조별로 토론을 하게 했다. 그들 대다수는 오늘의 청년 문제를 세대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삶이 덧없다…, 무한한 고통의 연속,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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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작전’은 현재 진행형 | 한겨레칼럼 2015년 11월 24일

(고) 황성모 교수는 일제 말의 동화정책, 문화적 일체화 정책을 ‘정신적 토벌’이라고 불렀다. 일본은 ‘남한대토벌’ 작전계획 아래 동학농민군 잔존세력과 의병의 근거지까지 완전히 없앤 다음 조선을 강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정신적·문화적 우월감을 갖던 조선인들의 내면까지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언어, 교육, 문화를 전체주의 방식으로 주입하여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만들고자 했다. 정신적 노예화였다. 거부하는 자에게는 경찰의 가혹한 보복이 따랐다. ‘응징적 토벌’이었다. 일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같은 조상이라고 거짓말을 했으며, 폭력적 지배를 문명화·근대화라 말했고, 조선 청년들을 불쏘시개로 동원한 전쟁을 ‘대동아 성전’이라 가르쳤다. 그들의 정신적 토벌은 앞으로도 조선인들이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이 가끔씩 던져주는 사탕을 받아먹으면서 노예로 만족하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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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의 언어는 권력위기의 징후다 | 한겨레칼럼 2015년 10월 27일

언어는 언제나 말하는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극단적 언어는 언제나 불안과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적과 나’의 이분법은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적’으로 지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폭력을 가해도 좋다는 의미다. 그것은 상대방이 존재할 권리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좌파’, ‘빨갱이’는 모든 대화를 차단하고 상대의 인간성을 부인하는 전쟁과 학살의 언어다. 이 경우 자신이 적으로 지목한 개인이나 집단의 약간의 불복종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지금 불안과 위기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과격하다. 그들이 말하듯이 학교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역사학자의 90%가 정말 좌익이었다면 이 나라는 하루도 지탱될 수 없었을 것이다. 판단력을 가진 학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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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상생’이라는 신기루 | 한겨레칼럼 2015년 9월 29일

지금 전국의 모든 케이티엑스(KTX) 좌석, 거리에 펄럭이는 현수막, 우체국 대기화면 등 곳곳에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소위 ‘노동개혁’의 구호가 넘쳐난다. 이것을 보면 성과도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기적인 기성세대가 된 느낌이 든다. 단박에 어이없는 구호라 생각했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부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임금피크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피고용자는 주로 공기업이나 재벌 대기업에 근무하는 50대 이상의 정규직이다. 기업가 단체는 이들의 고용경직성이 너무 높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는데 내년에 60살 정년 도입을 하면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하소연을 해 왔다. 현재 한국에서 대기업 정규직 규모나 재벌기업 전체 피고용자도 경제활동인구의 8% 정도인 200만 안팎에 불과하니까, 이 중 임금피크제가 적용될 수 있는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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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할 수 있는 일본, 전쟁 중인 한국 | 한겨레칼럼 2015년 9월 1일

일본 사회가 깨어나고 있다. 12만명의 시민들이 ‘집단적 자위권법’ 즉 전쟁가능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을 외치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청년들, 특히 자기 자식이 병사가 되어 희생될 것을 우려하는 어머니들이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전쟁이 곧 자신과 자기 아들의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70년 동안 일본인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과 한편이 되어 중국에 맞서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자는 우익들의 움직임에 강력 반발했다. 한국은 과연 어떤가?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6·25 전쟁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 이후 60여년 동안 우리는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우리는 지난번의 지뢰 폭발 사고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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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통큰 결단’? | 한겨레칼럼 2015년 8월 4일

삼성전자가 백혈병 피해자 문제 처리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쪽은 피해자 보상 등을 위해 1천억원 사내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 및 엘시디(LCD)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질환을 얻어서 고통을 입은 피해자 가족들과 삼성전자 쪽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조정위원회라는 테이블을 만들어 교섭을 진행해 왔다. 백혈병 등 피해가 개인적 사안이 아니라 ‘사회적 사안’이라는 전제 위에서 활동해온 조정위는 지난 7월23일 보상 및 재발방지를 위해 삼성이 1천억원을 기부하여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 삼성전자 등에 근무했다가 백혈병 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할 것, 위험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을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의 권고안을 냈다. 그런데 삼성은 사단법인을 만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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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밖과 성안, 성위의 망루 | 한겨레칼럼 2015년 7월 7일

히틀러는 “행정은 국가의 일, 입법은 정부의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은 국가를 관장하기 때문에 법 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행정수반’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와 유승민 몰아내기 압박을 받아, 여당이 자신이 제출한 법안에 의결을 포기하는 삼권분립 중단 사태를 보면서 그의 말이 생각났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박근혜 의원이 마치 야당 후보인 양 부각되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듯이, 이번에는 유승민이 소신 정치인으로 부각되면서 정치판은 온통 새누리당 이야기로만 넘쳐난다. 그런데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법 표결하자고만 여당에 호소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뭉개고 여당이 입법부 일원임을 포기하는 ‘비상사태’에도 야당은 의회정치의 파수꾼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을까? 한국의 헌법 제8조 1항에는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 한국에는 여당 하나의 ‘정당’만 존재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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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 한겨레칼럼 2015년 6월 9일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라고 큰소리치던 이승만의 심복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6·25 북한군의 기습을 맞아 총 한번 대포 한번 제대로 쏴 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내빼다가, 결국 모든 군인은 “각기 양식대로 행동하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전쟁 중 ‘각자도생’의 지시를 내린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다. 인민군의 기습으로 정작 본인은 이미 대전으로 내려가 놓고 국민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고 거짓 방송을 내보낸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은행 창고에 은행권을 그대로 두고 내려갔다. 국회 부의장 조봉암이 도망간 ‘대한민국’의 뒷수습을 하고서 서울을 떴지만 시민들까지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그 혼돈의 피난 상황에서도 전국의 특무대 요원과 헌병, 경찰을 총동원하여 위협세력이라고 간주했던 보도연맹원 수십만명을 구금, 학살하는 일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