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1945~2015)

되찾고 싶던 나라는 어쩌다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되었을까?

역사 국정교과서가 부활하려 한다.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르기가 ‘지옥(hell)’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한다. 일제의 식민지배 36년 동안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나라가 어쩌다 이토록 떠나고 싶은 나라로 변한 것일까?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 이 땅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 학술연구 분야 제3세대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는 그동안 연구자ㆍ사회운동가ㆍ정부 관리라는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기억의 창고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그런 그가 마침내 대중들을 향해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대한민국은 왜?』에서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노정을 거슬러 오르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Excerpt:

목차

추천의 글 | 신영복·따루 살미넨

들어가며

1부. 백성은 나라를 잃고, 나라는 주인을 잃고: 식민지와 분단

독립과 개화의 딜레마
tag 안중근 / 윤치호 / 러일전쟁
조선 근대화와 해방의 두 갈래 길
tag 공산주의 / 기독교
다시 8·15의 성격을 묻다
tag 광복절 / 건국절 / 분단 / 신탁통치
대한민국 보수의 기원
tag 미군정 / 한민당 / 친일경찰
왜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군림해왔나?
tag 정부수립 / 좌익숙청 / 국보법

2부. ‘자유세계’의 최전선: 국가 종교가 된 반공·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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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한국전쟁이 남긴 것들
tag 제한전쟁 / 폭격 / 반공국가
월남자들이 만든 대한민국?
tag 신천학살 / 반공주의 / 선교기적
반공이 국시가 된 이유
tag 자유당 / 부정선거 / 김창룡
한미 관계는 외교 관계?
tag 혈맹 / 주한미군 / 전작권
왜 일본은 사과하지 않을까?
tag 과거사 / 청구권 / 한일협정

3부.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라: 근대화의 그늘

부활하는 식민통치 박정희의 유신과 그 이후
tag 만주인맥 / 유신헌법 / 공안통치
교육 천국과 교육 지옥
tag 가족 / 학력간판 / 교육폭발
왜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 되었나?
tag 대북경쟁 / 재벌형성 / 노동탄압
위대한 민주화운동, 왜 절반만 성공했는가?
tag 민주화운동 / 세계화 / 신자유주의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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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간의의]

한국 근현대사 위에 다시 쓴 근대화 이론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는 동요하고 있다. 4ㆍ16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의 부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똑같이 반복됐고, 청년세대의 불안과 좌절은 기성세대에게 조롱당한다. 최소한의 권리와 인간적인 삶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국가권력에 의해 묵살된다. 『대한민국은 왜?』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정치ㆍ사회의 여러 문제, 특히 보통의 국민이 겪는 고통의 역사적 배경과 국제정치적 맥락이라는 퍼즐을 맞추는 책이다.
지은이는 한국의 현실을 세 개의 틀로 분석한다. 첫째는 한국 근현대사의 기본 과제다. 개화ㆍ독립ㆍ민권 국가 수립이 좌절되면서 친일파의 주도로 근대화가 시작됐고, 해방 후 이들은 통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자리를 지켰다. 둘째는 대한민국의 국가 이념이다. 특히 1950년 10월 황해도에서 벌어진 ‘신천학살’을 겪으면서 남한은 ‘월남자들이 만든 나라’, 기독교 반공주의가 국교國敎인 나라가 됐다. 마지막은 한국 근대의 성격이다. 한국의 근대는 외세와 분단의 압박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경제는 성장했지만 이상과 희망은 제거된 반쪽 국가가 됐다. 지은이는 세 가지 준거 틀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대한민국을 주도해온 친일-친미-반공-성장 세력의 본질을 밝힌다. 따라서 이 책은 이미 짜인 근대화론에 맞춰 쓴 역사가 아니라, 처음으로 시도되는 ‘한국 근현대사 위에 다시 쓴 근대화 이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누구의 기획인가?
이 책은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왔는가를 주로 다룬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식민지의 친일 세력이 해방공간에서 친미를 선택하고 반공 세력이 경제성장에 목을 맨 이유 등 ‘대한민국’을 기획한 세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1. 친일 1910~1945: 일본의 성공이 곧 조선의 구원이요 기회

(ㄱ). 조선의 독립 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애족적이고 인민의 복지에 호의적인 관심을 가진 더 나은 정부(일본)를 가진다면 다른 나라에 종속됐다 해도 재앙은 아닙니다.
(ㄴ).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며 (…)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과 고난이 필요했다.

(ㄱ)은 1889년 12월 28일 윤치호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이고, (ㄴ)은 2014년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문창극의 발언이다. 둘 사이에는 120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내용은 한 사람의 것처럼 똑같다. 이처럼 ‘친일’은 사라진 역사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 앞에 전복됐고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 그런데 조선인 가운데 망국을 슬퍼하지 않고 일본이 지배하는 ‘개화 세상’을 기회로 여긴 이들이 있다. 친일 세력에게 식민 지배는 조선의 종주국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윤치호다. 윤치호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며 제국의회 칙선의원이라는 조선인에게 허락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에게는 3ㆍ1운동조차 어리석은 일에 불과했다. 반면 독립ㆍ민권 세력, 특히 안중근 같은 급진파의 저항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됐다.

2. 친미 1945~1950: 점령군의 깃발 아래서 다시 기회를 잡다

(ㄱ). 반도의 남반부에서나마 자유와 독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방 미국의 은혜이며 (…) 한국 국민, 그리고 우리 자손들은 미국의 온정에 대한 사의를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ㄴ). 언제부터인가 ‘광복절’의 기년을 1948년 대신 1945년에 맞춤으로써 광복이라는 말이 가지는 참뜻이 상실되고 역사적 기억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ㄱ)은 1949년 6월 8일 이승만 대통령 담화의 일부이고, (ㄴ)은 2015년 광복절을 앞두고 이인호 KBS이사장이 발표한 글이다. 둘 사이에서도 시간을 뛰어넘는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제국주의 일본이 항복을 선언했다. 곧바로 38선 이북 지역을 소련의 군대가 점령했고, 9월 8일 미국의 군대가 38도 이남을 점령하면서 새로운 예속이 시작됐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미소 양국에 분할 점령된 조선은 백성의 권리와 자주독립이 보장되는 새 국가를 건설할 힘이 없었다. 결국 한반도의 운명은 새로운 지배자인 미국의 의지에 따라 결정됐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던 친일 세력은 미군의 통치에 발맞추어 친미로 옷을 갈아입고 기사회생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장악한 재화와 산업ㆍ생산 시설을 바탕으로 독립 세력을 제압하고 ‘애국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3. 반공 1950~1970: 반공의 시녀가 된 자유와 민주

(ㄱ). 한국민들이 자기 집이 파괴되는 것을 묵묵히 참고 차라리 가옥이 파괴될지언정 적에게 나라를 뺏기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민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치 않는다.
(ㄴ). 금년에 북한 공산 집단이 무모한 불장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해 (…) 국민 모두가 전사라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두 문장의 주인공은 이승만과 박정희다. 둘은 13년, 1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영구독재를 계획했다. 이들의 독재를 유지시켜준 전가의 보도가 바로 ‘반공’이다.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 민중이 공산주의 공포증에 휩싸인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권력자에게 대중의 공포는 이용하기 좋은 먹잇감이 됐다. 이승만 시절에는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이 휘두른 칼춤이 강산을 피로 물들였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비롯해 대통령의 정적 제거, 간첩 조작 등이 그의 손으로 진행됐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아예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이런 나라에서 국민들은 간첩으로 의심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정권에 대한 불만을 드러낼 수 없었다. 권력이 외부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자기검열하게 한 셈이다.

4. 성장 1970~2015: 영원히 반복되는 선先성장의 신화

(ㄱ). 경제가 잘되어야 국민이 배불리 먹고 등 따듯하고 포실한 생활을 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ㄴ).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ㄱ)은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을 설명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던진 질문이다. 꼭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보이는 (ㄴ)은 작가 김훈이 2015년 1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대한민국이 이룬 경제 기적의 배경에 미국의 1970년대 동아시아 전략과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지만, 주류 세력은 여전히 박정희의 지도력만을 강조한다. “박정희 시절이 가장 좋았다”는 말이 지금도 그들을 떠받치고 있다.
1949년 10월, 반민특위가 해산당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기업주들도 모두 풀려났다. 이후 그들은 정부의 지원과 특혜를 받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정치권에 선을 댄 기업들은 원조 물자를 독점하고 정부가 보유한 외환을 대부받으면서 재벌로 변신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일본의 사과와 배상 요구를 포기하는 대가로 ‘청구권 자금’을 받았다. 경제 개발을 위해 과거사 청산의 뚜껑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재벌 기업으로 흘러갔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는 이들에게 역사 읽기를 권한다
김동춘은 대한민국을 주도한 세력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질문’을 반복한다. 그리고 차분하게 조목조목 대답하면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연결한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힘은 강력하다. 지은이가 던지는 질문들은 그간 우리에게 익숙했던 ‘대한민국’을 낯설게 만든다. 익숙함이 지워지자 남은 건 ‘이상한 나라’다. 그 이상한 나라는 단 한 번도 내 편이었던 적이 없음을, 그렇게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슬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왜?』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동시대 지식인의 기록이며, 이 땅의 시민들이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국가에 대한 참회록이다.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기 위한 결의이기도 하다. 친일의 후예이고, 친미의 후예이며, 반공과 성장의 후예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 절망한 이들에게 그 절망의 기원을 찾아가는 이 책을 권한다.

[주요 내용]

본래 지은이 김동춘의 길은 노동문제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권력의 역할을 설명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형성과 지배 과정을 해석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김동춘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기억인 ‘전쟁’과 그 결과 형성된 ‘반공’의 신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외도’라고 표현했다. 정도처럼 깊고도 진지하게 바깥으로 난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 노정을 마무리하며 『대한민국은 왜?』를 펴냈다.

백성은 나라를 잃고, 나라는 주인을 잃고
1부에서는 구한말부터 6ㆍ25한국전쟁 직전까지를 다룬다. 지은이는 이 시기의 역사를 개화파와 독립파의 노선 갈등으로 규정하고, 각 세력의 대표 인물로 윤치호와 안중근을 불러온다. 애국가의 작사가인 윤치호는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일제강점기 내내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해방 직후 자살을 선택했다. 반면 안중근은 일제의 조선 지배에 저항하며 1909년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처형됐다. 갈등의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갈린 순간이자, 이후 지속될 굴곡의 출발점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을 때 역사는 다시 한 번 크게 굴절된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개화를 명분으로 일제에 복종하여 부와 권력을 누린 기회주의자들만이 경륜을 쌓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그들은 부일 협력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8ㆍ15 이후 미국ㆍ소련ㆍ중국 등 자신이 망명했던 나라의 인맥과 후광을 등에 업고 있었던 ‘해외파’와 필사적으로 손을 잡으려고 했다. 돈ㆍ지위ㆍ인맥 등 강력한 밑천을 가진 이들 부일 세력, 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해방’ 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했다. 8ㆍ15 이후 한반도의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사를 굴절시킨 식민지의 유산은 바로 이것이었다.(50쪽)

일본의 패망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일련의 정책들을 실행하며 조선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다. 1945년 9월 8일 인천항을 통해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발표된 「포고령 제1호」를 통해 38선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관한 모든 권한이 맥아더 사령관의 손 안으로 들어갔으며, 같은 해 10월 「기본훈령」을 통해 미군에 의한 한반도 점령을 ‘신탁통치’로 바꿀 것임을 밝혔다. 또 다른 지배가 시작된 것이다. 일제의 조선 지배에 협력하다가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하면서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던 부일 협력 세력은 미군의 통치에 발맞추어 친미로 옷을 갈아입었다.

일제강점기의 행적이 떳떳치 못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 주장해왔으며, 최근에는 아예 그날이 사실상 ‘광복’일이라 주장한다. 급기야 2015년 8월 15일에는 ‘광복 67주년’이라고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1945년 8월 15일, 즉 조선의 온 백성들이 환호했던 그날은 부일 협력 세력에게는 악몽과 같은 사망 선고일이었지만,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1948년 8월 15일은 그들이 기사회생한 날이었다.(67쪽)

‘해방된’ 조선의 이념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다시 기회를 잡은 주류 세력이 일제의 유산을 부활시키고 있을 무렵, 일본의 극우 전쟁범죄 세력은 맥아더 사령부와 손잡고 “천황제가 곧 국가”라는 주장을 내세워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보루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 말기의 파시즘적인 법과 제도가 폐지되면서 민주주의 국가의 외향을 갖추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1948.12.1)이 등장해 일제강점기보다 더 혹독하게 국민들을 몰아붙였다.

‘자유세계’의 최전선에 선 대한민국의 생존법
2부는 6ㆍ25한국전쟁부터 이승만ㆍ박정희 정권 시기의 반공독재를 다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38선을 넘어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이후 3년간 전선이 한반도 전역을 오르내리면서 군인과 민간인을 비롯한 300만 명 이상의 ‘코리안’과 미군 4만 명, 중국군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됐고 수많은 부상자ㆍ이산가족ㆍ전쟁고아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국토는 파괴되고, 수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졌다. 참혹한 전쟁을 통해 남한 사회에는 ‘반공’이라는 강력한 피아 식별 수단이 형성됐다.

전쟁 중 미군 폭격의 두려움 때문에 뒤늦게 월남한 사람들은 남한에서 ‘반공투사’를 자처했다. ‘공산당과 싸우다 월남한’ 이력은 반공국가가 된 남한 어디에서나 통하는 보증수표였다. (…) 서청 등의 극우 청년 조직은 제주4ㆍ3사건에도 투입되어 테러와 학살로 악명이 높았고, 각종 정치 테러에 동원됐으며 여운형ㆍ김구 등의 요인 암살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짙다. 이렇게 반공투사를 자처한 월남자들은 휴전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 사회를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갈라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127쪽)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핑계로 정적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유지했고, 박정희 정권은 아예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반공이라는 횃불의 장작이 된 것이 기독교다. ‘인간해방’의 이념으로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식민지 지배를 받던 백성들에게 인권과 정치적 자유 등의 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00년에 1만 명도 되지 않았던 기독교 신자가 1940년에 이르러 35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불어났고, 해방 이후에는 세계 기독교 선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선교 기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독교의 양적 팽창의 뒷면에는 권력과의 타협 혹은 권력의 위협이라는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사상적 이유로 이승만ㆍ박정희 정부의 의심을 받던 사람들은 교회나 성당에 나감으로써 ‘신원 보증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피학살자 유족들과 월북자 가족들도 남한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 제주4ㆍ3 당시 좌익으로 몰려 군과 경찰에 학살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국군에 자원입대해서 면죄부를 받으려 했던 행동과 비슷하다.(131~133쪽)

반공국가 대한민국, 기독교 국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미국이다. 이승만이나 장택상, 조병옥 등 미국에서 유학한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을 맹신했다. 미국을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지원하는 우방국가, 동맹국가를 뛰어넘어 ‘피로 맺은 형제’로 격상시켰을 정도로 한국의 집권 주류 세력은 미국에 목을 맸다. 이승만의 하야를 종용한 것도 미국이고, 인권 외교라는 이름으로 박정희 독재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미국이었기 때문에, 대중 역시 미국을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믿고 있었다. 바로 이 반석 위에서 미국은 그들의 동아시아 정책에 따라 한국 현대사를 좌지우지했다. 단순히 한국 정권을 조정하고 경제를 장악한 것에 그치지 않고, 36년간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매듭지어버렸다.

결국 이승만 정권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권도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와 국민들의 잘살고자 하는 열망에 편승하여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즉 한국을 일본의 경제 성장을 위한 배후지, 하청기지로 편입하려는 정책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한국 정부는 한일 관계에서 미래에 제기될 수도 있는 많은 미청산 과제를 깊이 검토할 여유도 없이 당장의 경제 개발 자금 확보에 목을 매달았다.(194쪽)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 ‘근대화’의 짙은 그림자
3부에서는 대한민국 근대화가 남긴 상처들을 돌아본다. 1961년 박정희는 5ㆍ16쿠데타 직후 「혁명공약」 제4조에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하겠다며 경제 개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고는 또 다른 과제인 경제정의 확립과 부패 청산을 포기하고 재벌과 손을 잡았다. 이후 정권은 재벌이 진출한 노동 집약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수출 금융 지원, 세제 및 환율 지원, 진입 제한, 노조 설립 차단 등의 정책을 폈다. 한국의 실정에 적합하고 효과가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고, 그것이 끝나면 다른 업종을 선정하여 다시 집중 지원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평범한 국민,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당시 한국은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을 갖추었고, 반공 체제 수립으로 사회주의 정당은 물론 노조 활동도 완전히 통제된 사실상의 우익 독재 체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법, 제도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제압할 수 있었다.(254쪽)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ㆍ경제 권력의 불평등을 해소할 기회의 문이 열렸지만, 우리 사회는 세계화ㆍ시장개방ㆍ신자유주의ㆍ구조조정ㆍ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거센 파도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급기야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재벌의 권력이 국가의 권력 위에 올라선 “기업국가”로 전락했다.

시민의 고발이나 노조 활동이 죄악시되는 나라,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생존할 수 없었던 과거의 ‘병영국가’가 오늘에 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종업원 혹은 ‘고객님’으로 불리는 ‘기업국가’로 변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군부 엘리트가 권력층에서 탈락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지만, 재벌이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언론을 사실상 소유하게 되었고 법원과 검찰도 그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지배질서는 거의 변한 것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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