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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력’ 기반으로 ‘연성정치’가 이뤄지는 나라 | 한겨레 2016년 4월 28일

http://www.sharon-zarabi.com/web/obama-the-dog-ate-my-homework/ by · 5월 1, 2016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7) 사회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들의 35%는 경쟁사회, 18.4%는 양극화사회라고 답을 했고, 평등사회, 공정사회라고 답한 사람은 1%에 지나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단절·원한·반감·단죄의 감정 등 극단적 트라우마 상태로 빠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불안한 상태에 있고, 많은 사람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거시적으로는 한국전쟁 전후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와 공포, 가까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진 승자독식, 경제적 약자들만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의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군사정권, 억압과 폭력은 지역 사회조직, 지방분권, 지방정치의 싹을 잘랐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중앙정치만 바라보면서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권위에 일방적으로 복종하되, 가족 단위의 생존과 출세만을 추구하도록 유도되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일단 싸움에서 승리해서 강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최대한의 특권이 보장되었고, 탈락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은 무한대의 생존 경쟁에 노출되었다. 권력과 법에 대한 불신, 불공정한 경쟁은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과 지위 상승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였다. 정치는 사회적 요구를 집합적으로 대표할 수 없었고, 시민사회는 저발전되어 있었으며, 법과 언론은 편파적이어서 약자가 의탁할 수 있는 사회적 방어막이 없었다.
사회적 약자가 무방비 상태에 놓이고, 약자 간의 연대가 해체됨으로써 지역사회와 일터에서 개인은 완전히 원자화되었다. 인구의 80%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 지역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이지 주민 교류의 공간이 아니었고, 아파트는 곧 ‘부동산’이었다. 지역사회는 관변조직과 힘 있는 건설업자, 자영자들이 움직였다. 기업에서 회사와 종업원의 관계는 수직적이며,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재벌 대기업은 직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 고용한 중소기업, 하청기업의 노동자들, 파견업체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의 삶까지 지배한다.
http://www.deltaventuraparckayakebro.com/do-my-assignment-uk/ 지금은 성장 말곤 미래 구상 없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연대도 차단
get link ‘보통 사람’ 손잡고 강자 맞서는 힘
‘사회력’ 있을 때 권력 의존도 덜해
http://loovharidus.ee/thesis-statement-for-a-persuasive-essay-on-education/ 갈등 치유 비용 줄이는 ‘연성정치’
시민자치와 시민 정화능력 필요
일제 식민지 지배, 군사독재, 그리고 신자유주의 질서는 형식적으로는 상이하지만, 국민을 순응과 경쟁으로 몰아넣어, 사회의 자생력을 말살하고 노동자나 서민대중의 조직화를 차단하고, 개인을 가족단위로 경쟁하도록 만든 점에서는 동일했다. 과도한 교육열로 표현된 능력주의와 순응주의가 사회 구성원 간의 수평적인 연대를 차단한 점도 동일하다. 그래서 오늘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취한 것이 많지만, 삶의 질에서는 거의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질주의와 성장주의 외에는 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과 사상도 거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어야 할 것인가? 나는 국가 혹은 정치에 대비되는 ‘사회력’ 혹은 ‘사회적 자생력’의 육성이 가장 시급하고, 사회적 연대가 경쟁을 보완 혹은 대신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력’(사회적 힘)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정치’에 덜 의존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 보통사람들이 연대를 통해 강자에게 맞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전쟁과 내전, 만연한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상황, 강대한 기업권력하에서 종업원이 고립된 개인으로 사용자의 전권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가 사회력 최저 상황이다. 반대로 지역사회에서의 주민조직, 노동조합,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각 직업, 직능 단체 등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촘촘히 조직되어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 단결하고, 서로 간의 이해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는 사회력이 극대화된 상황이다.
사회력은 사회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자율성, 책임성, 공공성, 혁신능력, 학습능력, 도덕적 역량, 공감능력을 말한다. 시민사회에서 사회력은 갈등해결 능력, 정치사회에서 사회력은 투표 참가의 열의, 국회의 사회적 대표성, 그리고 관료조직과 정치가들의 사회적 호응성 등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선거 외에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의 정책 결정,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전무하거나 대자본, 언론, 관료집단, 사법부 등이 입법부의 역할을 여러 방식으로 제압한다면 선거는 요식행위이자 국가 내의 ‘실질 권력’을 재생산하는 통로에 그칠 것이다. 정치력은 사회력에 기초를 두고, 국가의 힘도 궁극적으로는 사회력에 기반을 둔다.
국가의 억압,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력을 제한하거나 해체한다. 특히 재벌 대기업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까지 지배하는 오늘 한국에서 재벌의 과도한 사회경제적 지배는 사회력을 극도로 위축시키는 원인이다. 노조, 소비자, 주주, 이사, 지역 주민들이 재벌 대기업의 생산 활동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공공 복지기관, 협동조합, 각종의 시민기금이 시장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의 버팀목을 해 주는 사회경제 질서는 곧 사회력이 작동하는 상황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지만, 대기업의 경영권, 경제적 부가 세습되고,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곳에서 사회적 혁신이나 활력, 기술의 발전은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이것은 사회력의 고갈 상태인데, 사회력 고갈은 곧 경제성장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약자들이 사회력을 갖게 되면, 의회정치, 제도정치 밖의 정치, 즉 조정과 합의, 시민사회의 자생력과 자기치유력에 의해 많은 경제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사회의 자기치유, 산업안전, 공공체육, 갈등조정기구가 작동을 하면 국가나 기업이 지불해야 할 의료비, 보험료, 각종 보상비, 소송비 등 갈등치유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사회적 조정 과정을 ‘연성정치’라 부르고 싶다. 연성정치는 곧 시민정치, 혹은 시민자치, 사회의 정화능력을 말하는데, 억압적 공권력 발동, 제도정치나 소송, 사법부의 판결에 덜 의존하면서 이익집단이나 주민들 스스로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질병이 만연하게 되는 조건인 경제사회 환경은 문제 삼지 않고 의료를 공공적인 것으로 할 것인가 민영화할 것인가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사회경제 체제를 고안하는 작업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관료조직인 해경, 해양수산부는 물에 빠진 학생들을 거의 구조하지 못했지만, 인근에서 지켜보던 어민들은 곧바로 달려가 수십 명의 학생을 구조했고, 민간 잠수대원은 해경 이상으로 주검 수습에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국가기관은 잠수사들의 자발적 구조를 오히려 막은 의혹도 있다. 세월호 인허가, 운항, 침몰, 구조 모든 과정에서 사회력의 작동은 거의 제로 상태였다. 사고 직후 국가는 주민들의 자발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면서, 민간이 손을 댈 수 없는 구조의 영역을 직접 담당했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이 한 역할은 매우 자랑스럽지만, 국가가 계속 의병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국가와 의병은 합심해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
전쟁, 경제위기, 대규모 재난 사태가 발생하면 사회력, 연성정치 없는 국가는 거의 관료적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 국가나 정치가 튼튼한 사회력과 연성정치에 기초할 때, 사람들의 삶의 질과 안정감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도 튼튼해진다. 19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한국은 사회력과 연성정치를 죽이고서, 국가의 억압과 대기업 몰아주기 방식으로 근대의 길을 걸어왔다. 21세기에는 지난 세기 우리가 겪어온 이런 ‘비뚤어진 근대’의 과정을 청산하고, 사회세력을 주체로 만들고 ‘연성정치’를 통해 상당 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질서나 효율보다는 ‘생명을 부여하는 정치’, 신민(新民), 즉 백성을 ‘새롭게 하는’ 정치가 작동하는 곳이어야 한다. 인민이 지역이나 전국 정치에서 실질적인 주권자의 역할을 할 때, 그들은 생명을 찾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평등의 극복,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노동자 연대조직의 활성화, 영세자영업자의 조직화, 비례대표 강화 등을 통한 정치의 사회적 대표성 제고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사회력과 연성정치 확대를 위해 남북한의 사실상의 ‘전쟁 상태’ 극복은 꼭 필요하다. 분단, 전쟁정치는 ‘사회’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이 기획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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