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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바둑판의 돌’이 되려 하나? | 한겨레 2016.02.23.

i한반도에 또다시 전운이 감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가 유엔의 결의를 위반한 ‘도발’이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철수와 북한 ‘체제 전환’ 언급은 거의 전쟁 선포에 가까운 것이다. 그 어떤 ‘불안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 남북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국지전이라도 발생하면 한민족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고,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일본 우익은 ‘신이 내린 선물’을 얻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더 강한 경제제재를 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북한 주민들이 체제에 반기를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권 초기의 ‘통일대박론’이나 이번의 개성공단 철수 결정도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보수우익이 견지한 북한 붕괴론 위에 서 있다. 그들은 이북 사람들 모두 남한 자본주의를 선망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6·25 전쟁의 집단 기억이 북한 체제 유지의 역사적 기반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제재를 더 강화해도 이북 사람들은 남한과 미국을 더 적대시하게 될 것이다. 설사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더라도, 휴전선 이북 지역이 남한 영토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내의 내전적 갈등은 한 세대, 아니 한 세기 동안 갈 수도 있다.

중국의 압박이 북한에 가장 큰 변수인 것은 맞지만, 북·중 관계는 미군이 한국에 70년 동안 주둔하는 한·미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반도와 긴 국경을 접한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막아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북한을 버릴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휴전협정의 주체다. 그러므로 북한의 안보와 체제유지는 ‘국제사회’가 아닌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모든 행동은 미국의 응답을 구하는 ‘구애’이지 한국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공허한 것이었지만, 북한과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다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로켓 위성 발사에 ‘분노’하여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거론하는 것은 더더욱 ‘수준 낮은’ 행동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위성 로켓을 발사하자마자 미국이 말하기 전에 중국에 비수가 되는 사드 배치 문제를 꺼냈고, 급기야는 중국에 ‘바둑판의 돌’에 불과하다는 굴욕적인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미는 남한 몰래 비밀회담도 했다지 않는가? 미·중도 곧 협상할 모양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가 동북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특히 “한국이 미국산 무기의 주요 고객”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6·25 당시 그러했듯이 미국은 북한 붕괴 혹은 한반도 통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중국을 굴복시켜 미국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지가 그들의 사활적 이해다.

미-중 사이에 국지적 충돌이 일어나도 전장은 한반도일 것이고, 최대 희생자는 남북한 인민일 것이다. 구한말, 휴전협정기처럼 한국은 또다시 주변국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세계에서 무기 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도 말이다. 정권에 이익이 된다면 ‘강대국의 호구’라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되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 과거 독일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설계자 에곤 바르의 철학이었다. 나치의 죄악을 저지른 대가로 미·소에 의해 분단이라는 ‘처벌’을 당한 독일은 미·소의 심기를 건드리면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쪽을 안심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고, 결국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내전에서 국제전을 거쳐 휴전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중 어느 한 강대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통일을 이룰 수 없지만, 독일과 달리 남북 당사자의 신뢰 구축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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