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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상생’이라는 신기루 | 한겨레칼럼 2015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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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국의 모든 케이티엑스(KTX) 좌석, 거리에 펄럭이는 현수막, 우체국 대기화면 등 곳곳에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소위 ‘노동개혁’의 구호가 넘쳐난다. 이것을 보면 성과도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이기적인 기성세대가 된 느낌이 든다.

단박에 어이없는 구호라 생각했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부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임금피크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피고용자는 주로 공기업이나 재벌 대기업에 근무하는 50대 이상의 정규직이다. 기업가 단체는 이들의 고용경직성이 너무 높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는데 내년에 60살 정년 도입을 하면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하소연을 해 왔다.

현재 한국에서 대기업 정규직 규모나 재벌기업 전체 피고용자도 경제활동인구의 8% 정도인 200만 안팎에 불과하니까, 이 중 임금피크제가 적용될 수 있는 50대 이상 정규직 피고용자는 100만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즉 ‘자식의 일자리를 뺏으면서’ ‘철밥통’을 지키는 노동자 수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0만명 정도이고 이들도 60살 정년까지 근무할 확률은 낮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성과가 낮은 사람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으면 기업들은 그 몫으로 청년을 고용할까? 그리고 그 자리는 양질의 일자리일까? 지난 10년 동안 재벌 기업의 고용 규모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재벌 기업일수록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와 있다. 즉 이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대기업이 절감할 인건비는 그들이 현재 사내에 비축한 700조원이 넘는 유보금의 5%도 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늘어난 일자리도 양질의 일자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한국의 국민소득 중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24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고, 저소득 노동자 비율은 미국 다음인 2위에 올라 있다. 전체 소득 중 노동자가 가지고 가는 몫이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 이 정책은 소비 진작, 경제 활성화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연공임금의 관행이 남아 있는 한국 실정에서 정규직을 해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고용유연성은 지나칠 정도로 높고, 노동시장의 불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기 때문에, 실제 90%의 노동자는 고용 불안, 저임금, 그리고 일터의 불공정에 신음한다. 한국 노동자 중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19.7%에 불과하다는 사실, 노동자의 권리 수준이 139개국 중 거의 최하위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결국 기업가 단체의 숙원사업을 거의 그대로 받은 정부는 100만명 정도가 ‘누리는’ 그 알량한 ‘특권’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세대 간 대립’이라는 기만적 구도를 잡았다. 고용노동부나 노사정위의 합의안을 보면 사측이 장차 할 일은 모두 ‘노력’의 문제이며, 노측에게는 곧바로 목을 죄는 조치들이다. 사실 그동안의 정규직의 ‘과보호’는 대기업의 상층 노동자 포섭 비용이었고, 한국 노동시장의 불합리성의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재벌 기업의 순자산이 무려 77.6%나 증가한 이면에는 대다수 한국의 피고용자나 영세자영업자들의 고용 불안, 생활고, 자살, 파산, 그리고 ‘노예계약’의 피울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규직 교수인 나는 유능한 박사 실업자들의 힘든 처지를 생각하면 교수직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사학재단이 고연령 교수의 봉급 삭감 몫을 정규직 교수 채용으로 돌린다는 보장을 하고, 연봉 조정이나 신규 교수 채용 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협약을 위반한 사학을 처벌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청년들뿐 아니라 아버지 세대, 노인 세대 등 모든 세대가 불행하고 불안하다. 청년실업, 물론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부적절한 과세, 기술혁신 부족, 그리고 영세자영업자들에 대한 ‘갑질’을 먼저 거론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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